내 오래된 기억의 집에는 친구가 있다 -정이경
내 오래된 기억의 집에는 친구가 있다
│ 정이경(시인)
그때 내가 있었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도원 같은 집 나는 내게서 너무 멀리 떠나왔네 처음 그곳에서 나는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너무 낯설어서 마르고 까칠해져서 외면하고 돌아서 버리지나 않을까 담쟁이 넝쿨 가득한 기억의 집이여 그때 내 무엇을 열망하고 믿었기에 오래된 수도원 같은 집을 가졌던가
걸음이 둔하다 애인의 습관처럼 익숙해진 관념들을 잘라내고 돌아가려 한다 회귀본능이란 낡은 언어를 쓰지 말아다오 누군들 떠나온 언덕 위의 한 그루 소나무가 그립지 않으랴 그때 내가 있었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도원 같은 집 지금 나는 내게로 돌아가려 하네
─이달균, 〈내 오래된 기억의 집〉 전문
이러저러한 자리에서 이달균 시인이 말했다. 일반적인 편집방법을 따르지 않고 시집을 낼 생각이라고, 그것도 서울에 있는 출판사가 아니라 우리 지역에서, 하여 받은 가제본 형식의 작품집 속에 있던 ‘이월춘에게’란 부제가 붙어 있는 위의 글이 제일 먼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혼자서 잠깐 놀랐다. 80여 편의 작품 속에서 누군가가 일부러 펼쳐서 내보인 것도 아닌데 이 무슨 우연이란 말인가.
그렇다, 적어도 삼십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시詩의 주인공이 되는 이월춘 시인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우리들 연결고리 속에는 ‘살어리 동인’이 있다. 한두 살, 또는 서너 살 터울의 동인들은 문청시절을 같이 보냈다. 특히 성향은 엄연히 달랐지만 이달균, 이월춘 시인과 나는 동갑이란 나이로 좀은 허물없이(?) 지내기도 하였다. 또 권경인 시인과 나만이 여자였던가? 그러나 합평회 시간이면 남녀가 따로 없었다. 여러 동인들 중에서도 유독 동안의 외모와 함께 미성을 가진, 이달균 시인의 말솜씨는 놀라웠다. 이런 연유로 그는 어느 자리에서건 지금도 유능한 사회자로서도 손색이 없는 걸까?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그 시기에 곧잘 대학들은 교문을 닫아걸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우리는 기차를 타고 산인저수지를 보러 자주 그의 고향에 가기도, 가서는 이명성, 조문규 선배들과 함께 시간을 갖기도 하면서 오늘날의 우리들을 꿈꾸기도 했다.
모산(이월춘 시인)과 눌재(이달균 시인)의 사이를 달리 길게 말할 필요가 있으랴.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거문고의 명인 백아가 자기의 소리를 잘 이해해 준 벗 종자기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여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데서 유래한 지음을 떠올려 본다.
시詩를 읽다보면,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친구를 끝없이 그리워함을 알게 된다. 그러나 시적화자는 그 친구의 집은 수도원 같다고 한다. 아마도 쉽사리 허물어 새로이 고치거나 아니면 소문도 없이 팔아버리기까지 하는, 그런 집은 아니란 말일 게다. 설사 너무 오래되어 담쟁이 넝쿨만 창궐하는 그런 고색창연한 집일지라도.
집이란 무엇인가 밖에서 온갖 일들로 마음 상하고 큰소리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부대끼다가도 집에만 들어서면 가장 편안한 자세로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던가. 화자는 친구가 그런 집 같은 존재인 걸 안다. 심지어 “너무 멀리 떠나와서 낯설고 까칠해진” 화자를 외면하고 돌아서 버리지나 않을까로 잠시 고민도 하지만 “처음의 그곳에서 아직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치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 이는 사람에 대한 신뢰이고, 친구에 대한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화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도원 같은 집 지금 나는 내게로 돌아가려”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 집에는 아직도 소나무 한 그루 푸르게 서 있음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으므로.
정이경 《심상》 신인상 등단. 경남시인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