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을 읽다

말뚝이 가라사대-경남도민일보 기사

이달균 2011. 8. 17. 18:10

 

말의 춤판 얼쑤! 유쾌 통쾌하구나∼ 

이달균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

  

전통 시가와 전통 놀이가 '새롭게' 만났다. 매파(媒婆)는 시인 이달균이 자임했다.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를 통해서다.


이달균은 들머리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질렀다.


사설시조는 요즘의 랩을 닮았소

라디오만 틀면 쏟아지는 랩처럼

빠르게 부르지는 않았겠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빠른 가락이 아니었겠소?


양반님들 어깨 힘주고 흔히 부르던

지사적, 교훈적, 혹은 관조, 달관, 음풍농월을 담은

근사한 노래가 아닌

못난 놈들과 아낙들의 쌍스러운 음담패설

은근슬쩍 세상에 똥침을 놓는…….


형식과 내용에서 가장 서민적인 것을 쓰면서 조금씩 비틀기도 했다는 얘기다.


그 시詩가 이 시 같고

이 시가 그 시 같은 갈증은 어쩌지 못하겠소

그래서 때론 변덕을 부려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게요


노래로부터 너무 멀리 와 버리면

그 노래가 그리워지기도 안 하요

너무 도시적이거나 목가적이다 보면

해학과 재담, 풍자와 사투리를

잃어버리기도 하니께요


평론가 장경렬(서울대 영문과 교수)은 "'노래' 한 편 한 편이 이 형(이달균을 이름)의 목소리와 어조, 심지어 이 형 특유의 언어 감각과 상상력을 느끼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러 인물이 나름의 목소리와 개성을 지닌 채 각자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 느껴졌"다 칭찬했다.


 

<말뚝이 가라사대>는 '서막 광대들 납시오', '제1과장 문둥북춤', '제2과장 오광대놀이', '제3과장 비비', '제4과장 승무 과장', '제5과장 제밀주 과장' 여섯 마당 쉰네 편으로 짜여 있다.


곳곳마다 대조(對照)가 심상찮게 선명하다.


청산엔 봄꽃들 지천인데 내겐 아직 잔설만 남아 있다.

몽그라진 손으로는 코풀기도 어려워라

손가락 떨어진 곳에 파리는 왜 앉느냐.


찔레야

무성한 들찔레야

똥파리 좀 쫓아다오('9. 문둥이 고하기를' 부분)


이조 판서 영감과는 동문수학 막역지간, 위로는 임금 상제에 통하고 아래로는 내 알 바 아니라서

들은 적

본 적도 없다

알아 묵것냐

이놈들아!


길일 택해 씨 뿌리고 씨 골라 낳았으니

애초부터 근본이야 유별함이 당연지사

웃것은 사인교 타고 아랫것은 땅을 긴다('12. 양반 타령' 부분)


<말뚝이 가라사대>는 서사다. 막판은 큰어미와 작은어미 다툼이다. 큰어미 달려드는데 작은어미 몸을 튼다. 생남(生男)이다. 큰어미 아들 챙기려 드니 작은어미 달려들고 그러다 아이 떨어져 싸늘히 식고 곧이어 패악 부리던 작은어미 때문에 큰어미도 죽고 만다.


"서방 복 못 타고 난 게 두 번째 죄요, 대 이을 자식 바란 일이 죄라면 세 번째 죈데, 곰곰 생각하니 전부 사내가 엮고 사내가 비튼 여자의 운명이오."('49. 별사(別辭)' 부분)


봄밤은 깊어가고

달은 이지러진다

광대놀이 끝나고 나니

개구리만 청승인데


멀리서 별똥별 하나

벽방산을 넘어간다('54. 마무리' 부분)


마지막이 처음으로 이어지는 듯도 하다. 들머리 '1. 길 떠나는 광대들-여는 노래'에 이런 대목이 있다. "꽃 지는 등성에도 별 먼저 돋아오고/ 해 지는 마을에도 쉬어갈 집 있으니/ 한세상 펼치면 마당이요 접으면 외줄타기". 넘어간 별똥별, 별로 다시 돋아나 한 판 마당이나 한 판 외줄타기가 될 것 같다.


2009.11.17  06:08:18  김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