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출신 7인 사화집 -아림숲을 걸어나온 시인들
아림숲을 걸어나온 시인들
-거창출신 7인 시인 시선집 《아림숲에서》를 중심으로
이 달 균
1998년 12월, 거창 출신 시인 7인 시선집 《아림숲에서》가 나왔다. 이 사화집은 거창 출향 시인 7인의 면모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획으로, 거창 지역신문인 아림신문(발행인 윤 구) 발간 9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되었다. 이 사화집이 시선을 끄는 이유는 재정이 넉넉지 않은 지역신문사에서 출향 시인 7명의 시편들을 함께 묶음으로써 시심으로 고향과 타향의 경계를 허물게 하고, 거창의 후학들에게 자긍심을 갖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사화집의 탄생은 신중신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카프카의 집> 출판기념회를 고향 거창에서 열어준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 자리에서 신중신 시인은 고향에서 발원(發源)된 시심을 확인하게 되었고, 다시 타관에서 얻은 것들을 본래의 시원(詩源)으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때 이미 그의 촉수는 거창을 향해 있었고, 출향 시인들과 더불어 고향 사랑을 실천하고 싶었으리라. 이 시선집은 출향인으로서의 고향을 향한 애틋한 마음과, 떠나있는 자로서의 자신과 현실적 거리를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에게는 동시에 여러 빛깔의 읽을 거리를 제공해 준다. 이들은 이미 한국문단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룬 시인들인데, 이 글에선 여기에 실린 시편들을 중심으로 특징과 개성을 살펴보려 한다.
무욕(無慾)과 적요(寂寥)... 全 基 洙
쉬면서 마지막에 내가 할 일은
단풍산을 화려하게 둘러보는 일이요
단풍잎을 곱게 매만지는 일이요
단풍가지를 虛空에서 웃어주는 일이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맑은 물에 담그는 일이다.
나그네들이여
참으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개울에서 落葉의 수를 세워 보는 일이요
세면서 세면서 물살에 띄워 보내는 일이요
떠날 때엔 그것을 잊어버리는 일이 아닐 건가?
-전기수 <無爲-海印寺 溪谷에서> 전문
전기수 시인은 1928년 거창읍 송정리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1957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현대문학의 추천은 자신의 영광이기도 했지만, 지역의 자랑이기도 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이슬처럼>의 황선하 시인과 나누었던 각별한 교감도 같은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다는 동류의식도 한 몫 했음이 틀림없다. 시집으로 「祈願」외 6권이 있고, 한 권의 시선집과 두 권의 산문집이 있다.
1966년에 펴낸 시집「殘雪」에 실려있는 위 시는 전기수 시인의 심성을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동안 시인이 걸어온 삶과 문학의 일치는 이미 이 때 예견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두 번째 시집을 펴내던 36세에 이미 그는 무위를 말하고, 생의 마지막을 수놓는 단풍잎의 화려함 속에서 허공을 보려했다. 그리고 둘째 연 (손가락을 맑은 물에 담그는 일)의 구절은 이 시인이 세속적 허명에 얽매이지 않으리란 생각을 이미 오래 전에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는 요즘 너무 일찍 도에 이른 듯한 얼치기 시인들의 생경스러움과는 분명히 다른 겸손과 적요를 보여준다. 이 시인은 시어를 다소곳이 다듬어 쓰고, 서정의 농도를 알맞게 발효시켜 드러내는 여유를 함께 가진다. 평생 서정시인의 길을 걸어왔지만, 낡거나 녹슬지 않으려는 긴장감을 늘 유지했기에 격을 잃지 않은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 자세는 간간이 발표하는 산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인의 무욕은 위에서 드러난 자연관과 함께 뿌리깊은 동심에서 기인된 듯도 하다. 무욕은 천진난만함과 통한다. 동심은 언제나 꿈을 향해 있고, 그 꿈은 세속의 것과는 무관한 빛깔을 지닌다.
아이야, 젖줄기 같은 고운 물의 水路가에서
숨막히는 더위도 모르는 듯
벗은 윗도리를 구리빛으로 익히며
개구리 한 마리 잡아 뒷다리 거머쥐고
아득한 벌판 바라보며 너는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느냐?
<중략>
내 젊은 날 한여름에는
끄지 못할 戀慕의 불길을 싸가지고
피처럼 진한 言語를 찾아
한낮의 벌판을 짐승처럼 헤맨 적이 있었느니.
아이야, 새맑은 눈빛이 타오르는 지금
너는 한여름의 꿈을 찾아보는 것이냐?
-<한낮에>부분
어린 날 개울가에서 개구리 잡아 장난칠 때 먼 벌판 바라며 그는 무슨 꿈을 꾸었던가. 그리고 청춘의 한 때 가슴 속에 타오르던 연모의 불길은 무엇이었던가. 그가 찾아 헤맨 것은 바로 피처럼 진한 언어였다. 진실에 바탕한 문인의 길은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나무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문학 활동은 젊은 날 꿈꾸었던 이런 이상에 다가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만큼 그는 경남에 뿌리박고 살면서도 지역 문단에서 누릴 지위와 명리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시인으로서의 기본적 직분은 시 쓰는 일임을 몸소 보여준 예라 하겠다. 고향을 떠나와 지금은 교직의 마지막을 보낸 김해에서 정년이 없는 시인의 길을 가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거창을 향해 있다.
통찰의 거울... 신 중 신
작은 굴뚝새 한 마리
포롱포롱 날개짓을 한다.
많이 내릴 낌새를 감춘 채
눈발 시나브로 희번득이는 굴뚝께의,
그 눈발처럼 희끄므레한 연기가
힘살 없이 풀려나는 굴뚝 언저리
배고픔이 과연 저토록 가벼울까
속절없는 것일까 굴뚝새의 여린 울음소리
어스름녘 스산한 산하의 일점 따스함으로
포롱포롱. 밤을 넘길 눈꺼풀이
저녁 연기보다 가뭇없을진대
미구에 눈사태가 날 게다
폭설주의보다.
-신중신 <폭설주의보> 전문
신중신 시인은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거창과 가장 거리가 먼 듯 하면서도 거창을 관류하는 옛 선비들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전통과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둔 듯도 하지만, 그 속엔 다분히 전통적 빛깔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가 내재되어 있다. 그만큼 다의적이고 복합적 구조를 띠고 있다. 그의 시들은 화려하거나 유장하지 않다. 신중신 시인은 화려한 언어의 수사에 함몰되는 의식들을 경계한다.
인용한 시 <폭설주의보>도 눈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눈발은 아직 굴뚝께에서 희번득이며 내리는 정도다. 굴뚝 근처엔 굴뚝새 한 마리가 날개짓을 하고, 연기는 희끄므레하게 풀려지고 있다. 여느 때와 다른 굴뚝새의 움직임이 뭔가를 예고할 뿐이다. 굴뚝새는 본능적으로 오래 배고플 것임을 안다. 시인은 그저 굴뚝새의 포롱대는 끼니 걱정이 폭설과 잇닿아 있다고 믿는다. 이 시는 폭설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아직 큰 눈이 내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폭설의 세상을 향하고 있다. 미구에 올 눈사태는 둔탁하게 시인의 뇌리를 때린다. 이런 통찰력은 예사롭지 않다. 일순 정지한 듯한 작은 풍경 속에서 거대한 변화의 조짐을 읽어내는 힘이 있다. 폭설은 굴뚝새에겐 거부할 수 없는 폭력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층을 적시거나 증발하여 구름이 되기도 한다. 결국 폭설은 생명 그 자체를 앗아가진 못한다. 폭설 속에 감춰진 생명의 본질은 늘 올곧게 살아있게 마련이다.
이 시처럼 신중신 시인의 시선은 현상에 머물러 있지 않다. 언제나 현상 속에 감춰진 것들에 눈길을 주려한다. 그래서 그의 시들은 난해해 보인다. 서구적 시어, 토속성의 의식적 배재 등이 자칫 현대적 가치의 추구를 위한 것 같지만, 실은 그 현대성 속에 함몰된 (정당한 男根의 된서리)를 가슴아프게 노래하고 있다. 그의 출발은 전통 서정에 가깝게 닿아 있었다. 62년 사상계 신인문학상 당선작인 <내 이렇게 살다가>는 삶과 죽음, 그리고 생명의 영원성을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에서도 그가 즐겨 사용하는 기법들은 다분히 모더니스트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을은
졸음이 육신 속을 스며들 듯
나를 시들은 잔디 사이
고요한 모랫길로 끄을고 가는데
끄을려 가는 발자국에 진탕물이라도 고여
내가 지나간 표지(標識)라도 되었으면......
-<내 이렇게 살다가> 부분
가을과 죽음의 표현에서 그가 사용한 오브제는 낙엽이나 세월 같은 것들이 아니라 시든 잔디, 고요한 모랫길과 표지등이다. 서정은 전통에 닿아 있었지만 낡은 비유들을 쓰지 않으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가 지나간 길, 이를테면 그 자국이 진흙탕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 흔적들은 자신의 표식이 될 것이다. 시는 시인의 거울이다. 신중신 시인의 거울은 언제나 자신을 향해 있고, 그 자세는 타협하지 않으려는 꼿꼿함을 견지한다. 통찰력은 필연적으로 진지함을 수반한다. 그 의지의 표현방식은 맹목적 서정에 기대기보다는 인식과 사유에 바탕한 시어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맛깔스런 언어, 그 성찬으로의 초대... 표 성 흠
이슬은
새벽 이슬은
그냥 찬 게 아니다
밤새 뒤끓던
열정과 울음을 삭히고 난 뒤의
조용한 자기 반성으로
되돌아본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숲속의
아침 공기가
맑은 것은
이슬 맺힌 풀잎들의
찬 눈 있기 때문이다
오오, 투구벌레
이슬만 먹고 사는 투구벌레가 쓰는 시
-표성흠 <이슬은> 전문
표성흠 시인은 독자들에게 시란 무엇이냐고 묻는다. 시는 밤새 뒤채이고 들끓던 열정과 울음, 환희들을 조용히 다독이고 난 뒤에 맞는 아침 이슬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시인의 존재는 또 어떠한가. 늘 서늘한 이마를 간직한, 아침 나절의 투구벌레에 비유한다. 시인은 언제나 물잔의 냉기처럼 서늘히 깨어있으되 아침처럼 투명해야 하고, 열정과 울음을 지녔지만 갈앉은 잔돌처럼 냉철해야 한다.
그렇다면 표성흠 시인의 시세계는 선시(禪詩)에 가까운가? 아니다. 위 시처럼 고결한 시인은 어쩌면 세상 모든 시인들이 닮고 싶은 이상형일 뿐이다. 시인은 늘 갈등하는 존재이며, 희노애락의 한 가운데를 흘러가면서 애써 자신을 드러내는 소리꾼일 뿐이다. 그 노래도 자신을 위한 것이다. 시인의 사회적 책무, 혹은 도덕성 등은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지만, 기실 시인은 이기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은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고 스스로를 만족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표성흠 시인은 맛깔스런 언어 요리의 달인이다.
하므나 돌아올란가
도보 장수 우리 오매
등짐 두 말 머리에 한 말
고제(高梯) 빼재는
눈이 오는데.
-<土俗의 詩>부분
인용한 시는 의미망에 걸리는 시어는 없다. 그저 고제를 넘어와야 할 도보장수 어머니를 기다리는 심정이 드러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시는 더 빼고 넣을 말이 필요 없는 완전성을 획득하고 있다. 바로 시의 맛을 제대로 낼 줄 아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하마나 올란가 . 등에 진 짐은 두 말, 머리에는 한 말. 어머니 휘어진 등보다 더 높고 휜 고제, 빼재 넘어 오시는 길. 점점 어두워 오는 시각, 스산히 눈이 내린다. 이런 광경을 단 몇 행으로 줄여 놓았다. 마디마디 음절을 끊어서 리듬을 살린 효과는 시인 자신의 성품이겠지만, 시란 때로 이렇게 횟감을 요리하듯 즐길 줄도 알아야 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능력이 누구에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능력은 노력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지적 몸짓은 노력으로 극복되지만 소리꾼의 자질은 타고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표성흠은 직관의 시인이다. 그의 1970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세 번째 겨울>도 분단과 여성성의 상실 등을 짐짓 모른 채 세상의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던 한 청춘과 동시대인들의 세속적 고뇌를 한 궤로 엮어낸 수작이다. 표성흠은 시인인가, 소설가인가. 한마디로 그는 전업작가다. 소설과 시를 겸하는 작가가 더러 있다. 김동리, 박경리, 한승원, 조성기, 송기원, 김영현 등등. 시는 동요하는 심상의 미묘한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작업이고, 소설은 그 미묘함을 둘러싼 상황을 묘사하여 사실성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므로 대개 이들은 소설 속에서 흘려보낸 미묘한 여운들을 형상화해 내려는 욕망을 갖는데, 이 갈증들은 결국 시로 쓰여져 나온다.
시인 표성흠은 그 미묘한 이미지를 포착해 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런 그에게 시인이냐 소설가냐는 식의 물음은 무의미하다. 시를 써보지 않고는 음미할 수 없는 언어의 맛, 그 요리의 성찬을 우린 즐기면 된다. 시와 소설로 함께 등단하였지만, 전업작가로서의 삶이 다소 소설 쪽으로 추를 기울게 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지금 그는 고향 거창에 돌아와 시인 표성흠으로 살고 있다.
일탈을 위한 변주... 신 달 자
오늘도 나는 너의 벗으로 돌아왔다.
태풍에 휩쓸려 무너질 것 다 무너지고 서슬 푸르게 뻗
어가던 욕망의 가지 다 꺾이고 부끄러울 곳도 가릴 것 없
이 다 벗겨져 돌아왔다.
광야여 손잡아다오.
오늘 나는 더 어두울 수 없는 어둠으로 더듬거리지 않
고 돌아와 빈 들판으로 누운 너의 살이 되려 한다.
무너질 것 다 무너진 속살의 흐느낌 풀어 너의 발끝을
씻으며
너의 안에서 끝내 허물어지지 않는 집을 짓고 짓다 허
문 나의 꿈을 바라보고자 한다.
내가 사모하던 꿈을 꿈의 먼 나라에서 바람에 전해
들으며 광야의 큰 가슴으로 큰 귀로 땅에 엎디어 수세기를
지나도록 전해 듣고자 한다.
나보다 먼저 돌아와
광야가 된 나의 영혼이여.
- 신달자 <曠野에게> 전문
신달자 시인은 일탈의 원심력과 중심을 버티려는 구심력의 경계 위에 선 시인이다. 시인은 늘 일탈을 꿈꾼다. 시인에게 있어 평정이란 위험한 것인지도 모른다. 상처받은 자에게 다가가 마음으로 바깥을 내다보는 법을 말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도 끊임없이 상처받고 갈등해야 한다. 시인들은 늘 정체된 사물 속에 감정을, 낯선 이름을 붙이려한다. 그것이 소명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신달자는 시인의 소명에 적합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위 시는 일탈을 꿈꾸는 시인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시인은 사모하던 큰 꿈을 향해 서슬 푸르게 욕망의 가지를 뻗어 내렸고, 칠흑같이 깊고 어두운 곳으로 나아갔다. 일탈은 강렬했다. 산산히 부서져 버려도 좋을 만큼 뜨거운 열망을 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열망의 무게로는 감당키 힘든 장애에 가로 막혀 돌아오고 말았다. 태풍에 휩쓸리고 부끄러울 곳 가릴 남루도 없이 발가벗긴 채. 그리고 광야에 손을 내민다. 그녀에게 광야는 무엇인가. 견고한 집을 짓다 허물어진 자신의 꿈을 바라볼 수 있는 집이다. 광야의 가슴에 엎드려 머나 먼 나라의 사연과 우여곡절들을 수세기를 지나도록 전해듣고자 한다. 이미 시인은 사라져 버린 후인지도 모른다. 시인이 꿈꾸는 광야는 영생이기 때문이다. 수세기가 지나도 존재하는 광야는 결국 시인이 꿈꾸는 모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의 영혼은 광야가 되는 것이다. 이 시는 무한한 일탈을 위해 몸을 내던진 시인이 다시 자신의 내면 속으로 돌아와 꿈을 영생의 것으로 바꿔 놓기까지의 궤적을 보여준다.
어둠 속에서 핸들을 잡으면
줄밖으로 나가고 싶다
줄 밖으로 나가 줄 밖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실은 두 손이 터질 듯
간절히 차오르는 친숙한 방향의 기억이
어둠 속에서 시동을 걸면
온몸에서 끓어올라
두 개의 헤드라이트를 켜면
나는 불꽃여의주를 문 용이 된다
-<밤운전> 부분
이 시 역시 일탈을 향한 변주다. 그러나 그 일탈은 늘 구심력의 경계를 넘지 않는다. 줄 밖의 사람은 현재 내가 만져지는 이들이 아니지만 언제나 친숙한 그들이다. 그들을 향한 탈선은 여의주를 문 용이 되어서 하늘을 날을 뿐이다. 간절함은 오히려 사람을 냉철하게 한다.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지 어언 30년. 그 동안 시인은 8권의 시집을 펴내었고, 베스트셀러가 된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수필집 「백치 애인」,「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등을 출간했다. 그녀에게 소설 창작과 방송출연 등은 시인으로서의 일탈의 통로가 아닐까. 그렇다. 시인은 돌아와 더 단단하게 시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내일도 끊임없이 일탈을 감행할 것이다.
멱라에서 부르는 삶의 노래... 이 기 철
걸어가면 지상의 어디에 멱라가 흐르고 있을 것인데
나는 갈 수 없네. 산 첩첩 물 중중
사람이 수자리 보고 짐승의 눈빛 번개쳐
갈 수 없네
구강 장강 물 굽이치나 아직 언덕 무너뜨리지 않고
낙타를 탄 상인들은 욕망만큼 수심도 깊어
이 물가에 사금파리 같은 꿈을 묻었다
어디서 이소(離騷) 한 가닥 바람에 불려오면
내 지상에서 얻은 병(病) 모두 쓸어 저 강물에 띄우겠네
발목이 시리도록 걸어가는 나날은
차라리 삶의 보석을 갈무리한다고
상강으로 드는 물들이 뒤를 돌아보며 주절대지만
문득 신발에 묻은 흙을 보며 멱라의 길이 꿈 밖에 있음을 깨닫고
혼자 피었다 지는 꽃 한 송이에 눈 닿는 것도
이승의 인연이라 생각한다
일생이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일생이 노역(勞役)과 상처 아문 자리로 얼룩져 있어도
상처를 길들이는 마음 고와서 아름다운 사람은 있다
때로 삶은 우리의 걸음을 비뚫어지게 하고
독(毒) 묻은 역설을 아름답게 하지만
멱라 흐르는 물빛이 죽음마저도 되돌려주지는 못한다
아무도 걸어온 제 발자국 헤아린 자 없어도
발자국 뒤에 남은 혈흔 쌓여
한 해가 되고 일생이 된다.
-이기철 <멱라의 길 1> 전문
처연하다. 어딘가에서 밀려오는 물비늘들이 잔잔히 눈가를 적신다. 시인 이기철의 시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존재를 물으며 다가온다. 삶이 무어냐고, 삶 속에서 너는 누구이며 무엇이 아름다우냐고. 하지만 결코 시인은 철학적 명제에 독자들을 묶어놓지 않는다. 시는 서정적이며 시어들은 하나하나 반짝이며 살아있다. 그가 그려내는 서정의 빛깔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것들이 아니다. 그것을 흔히 신서정이라 말하지만 그 또한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위 시는 의미를 캐지 않고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시인이 설정한 비애의 공간과 그늘이 독자들의 감성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멱라는 있는가. 전국 시대 초나라의 굴원이 주위의 참소로 분함을 이기지 못해 빠져 죽은 그 애절한 강 하나를 우린 갖고 있는가. 이 지상 위에서 어떤 절실함으로 살고 있는가. 그저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작은 이득과 집착을 버리지 못해 절실해지지 못하는 우리들. 이소(離騷. 굴원이 멱라에 빠져 죽을 결심을 하기까지의 시름을 적은 장시. 시름을 만난다는 뜻) 한 구절 들으며 시인은 세상에서 얻은 병(病)들 쓸어 강물에 흘려보내고자 한다. 하지만 멱라의 길은 꿈 밖에 있다. 사람의 생이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상처를 길들이는 마음이 고와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 상처와 혈흔 다독이며 쌓아가는 나날들이 생애가 된다.
이 시는 잠언들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결코 말씀이 시를 앞서나가지 않는다. 시인이 일상에서 만난 체험들은 언어들 속에서 따뜻하고 슬픈 공간을 만든다. 이기철 시인의 시들은 문청들의 필독서로 읽힐만한 충분한 이유를 지녔다. 시가 왜 사람을 깊어지게 하는지. 시를 읽으면 왜 농울치던 설움도 고요한 비애에 다가가게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시어를 갈고 닦아 써야 하는지. 이기철의 시는 이런 물음에 대한 모범 답안이다. 그렇다면 이런 그의 서정은 어디에서 연유할까. 어쩌면 유년과 성장기의 체험이 녹아있는 아림숲과의 인연 때문은 아닐까.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며칠째 청산에 와 발을 푸니
흐리던 산길이 잘 보인다.
상수리 열매 주우며 인가(人家)를 내려다보고
쓰다둔 편지 구절과 버린 칫솔을 생각한다.
남방으로 가다 길을 놓치고
두어 번 허우적거리는 여울물
산 아래 때까치들이 몰려와
모든 야성을 버리고 들 가운데 순결해진다.
-<청산행> 부분
시인도 순결해 지고 싶어 청산행을 택했다. 도회에서 보던 산길이며 사람, 생각들도 흐릿했지만, 며칠간의 산생활이 마음과 눈을 닦아준다. 그에게 청산은 스승이다. 시인은 청산을 가슴에 지니고 살고 싶어한다. 어차피 인생은 그에게도 버리지 못할 야성으로 승부해야하고, 똑바른 길만을 고집할 수도, 허우적거리며 허방에 빠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그도 청산을 갖지 못했다. 눈이 흐려질 때 청산을 바라보거나, 멱라의 강을 건너지 못해 사연들을 흘려보내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시인은 관조를 꿈꾸지만 관조자가 아니다. 멱라가 보이는 언덕 위에서 처연하게 삶의 노래를 부를 뿐이다. 이 것 말고 시인이 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기철 시인은 거창 가조면 태생이다. 등단 30년의 기간 동안 <낱말 추적> 외 8권의 시집을 펴내었고, 한 권의 시론집과 소설집, 그리고 두 권의 비평집을 펴낸 왕성한 현역이다.
상실의 아픔에 대하여... 신 중 혁
무서리 아침
산이 술렁거리고 있다.
잎새마다 시린 손을 부비며
등 너머 햇살을 발돋움하고 선다.
귓불 언저리, 닳아오르던 귓속말
산장의 아궁이 밑불도 사위어 가고
만난 것만큼이나 쉽게
헤어짐도 훌훌
신발 끄는 소리가 뜨락을 내려선다.
성급한 골짜기는 하마
청산(淸算)의 빈손으로 남아
산을 내리는 사람들의 발길은 푸석푸석 헛디디고 간다.
지사(志士)의 시대가 아니라서
교훈도 강철못처럼 튀는 벽
걸어둘 곳이 없는 가을에
평복차림 그대로
겨울을 맞을 것이다.
-신중혁 <상수리 나무의 단풍> 전문
신중혁 시인은 1938년 거창읍 대동리에서 태어났다. 이 책의 정보에 의하면 그는 50년대 이미 학원지에 작품을 발표한 청소년 시인이었다. 이는 문학성의 조숙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정환경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1982년『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이후 40년간의 교직 생활 틈틈이 「상수리나무의 잠」을 비롯, 3권의 시집을 펴냈다.
신중혁 시인의 상상력은 일상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일상성의 탈출이 신달자의 시적 모태라면, 신중신은 지적 사유와 인식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이 그것이다. 이에 반해 이 시인은 버려지는 혹은 주목받지 못하는 주변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출발한다. 이런 자세는 자성의 모습으로, 때로 교훈적 회초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인용한 시에서도 그런 모습은 드러난다. 아침 상수리나무 숲은 수런거림으로 시작된다. 시린 손들은 햇살을 향해 발돋움해보지만, 뜨겁던 간밤의 맹세는 아궁이 밑불처럼 쉽게 사위고 만다. 가을날 상수리나무도 성급한 잎새를 턴다. 그저 빚을 갚는 심정으로 청산하듯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 지사의 시대가 아니라서 그 흔한 뜻을 세우지 못하는 사람들. 교훈도 말씀도 둘 곳 없는 세태를 시인은 안타깝게 바라본다.
신중혁 시인이 즐겨 그려내는 대상은 막내의 얼굴, 화해할 이웃, 때묻은 평복차림, 여섯 남매의 겨울, 할아버지 정갈한 삶 등등이다. 이들로 향한 시선은 따뜻하지만, 일견 너무 범속하고 단선적일 수 있다. 물론 시란 자잘한 일상의 것들을 가져와서 둔탁하게 심상의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지만, 수많은 정보에 떠밀려 가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란 쉽지 않다.
대밭에는
할아버지 말씀이 무성하다.
여우비 속에
서녘하늘 무지개 서고
무지개 속에는
일곱 줄기 맷자국도 보인다.
허리춤 창칼 같은 삶
때로는 부스름도 도려내고
새벽 안개에 흐린
과녁도 일깨운다.
황산벌에서 일어선 바람
대밭을 빠져나가는 말울음 소리
엉덩이 박힌 살( )도 잎새 돋아나
다시 살을 다듬는 창칼이 보이고
대밭에는 늘
할아버지의 말씀으로 출렁인다.
-<설대밭에서> 전문
대밭은 말씀으로 가득 차있다. 댓잎 흔들리는 대밭에선 누구라도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소리 지르고 싶지 않으랴. 시인은 대밭에서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종아리를 때리던 대나무 회초리도, 황산벌을 누비던 죽창을 든 말탄 사내의 음성도 듣는다. 대밭을 매개로 하여 할아버지의 올곧은 말씀에서 백제라는 역사의 공간에까지 시인의 상상력은 곧바로 가 닿는다. 하지만 이 역시 시공을 초월하는 이동 방식이 너무 단선적이다. 일곱 빛깔 무지개라는 동화적 설정에서 갑자기 죽창의 피 튀기는 황산벌로의 시공 변화가 부자연스럽다. 활달한 상상력의 전개는 설득력 있는 환경 설정과 거침없는 보법이 중요한데, 이 시에선 이 부분의 처리가 다소 미흡해 보인다.
신중혁 시인은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들을 너무 쉽게 잃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웃에 대해, 지나간 것들에 대해 (뭉클한 그리움으로 보듬)을 수 있는 여유를 찾아야 한다. 상실의 시대, 그래서 차라리 지사이고 싶은 시인이 있다. 지사가 그리운, 너무나 지사적이지 않는 나날.
화해, 그 느림의 보법... 이 희 선
벌목으로 흐트러진 모양새
관념의 웃자란 군더더기
아프지만 잘라내고 가지치기
틀에 알맞도록 배틀고 옭죄여
왕사위 단단한 뿌리 내릴 때까지
마른 기침으로 갈증 함께 참아내기
오랜 세월
시리도록 눈에 넣고
진물나게 보채기
낮달 같은 시지근한 실의에 빠졌다가도
뭉클한 그리움으로 보듬기
마지막 남루의 내 영혼까지
벌건 숯불에 던져
부글부글 끓이고 달여야
비로소 너와 만날 수 있는
눈들의 높이에 나설 수 있는.
- 이희선 <盆栽, 혹은 詩> 전문
이희선 시인의 화두는 화해다. 세상에 대해, 자신에 대해, 그리고 시에 대해. 시인에게 있어 화해는 절대적 명제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고통을 짐지고 갈등의 늪 속에 자신을 버려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상처를 만들고, 치유하려한다. 시는 이 과정의 산물이다. 상처와 화해는 늘 상대적 거리를 갖는다. 이 대립의 흔적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독자가 느끼는 공감의 폭도 달라진다.
인용한 시에서도 시인은 화해를 시도한다. 그러면 그의 의식을 산만히 흐트린 존재는 무엇인가. 시인은 분재와 시를 동일한 대상물로 인식한다. 분재는 거대한 것을 작게 축소시키지만, 자연 원래의 모습처럼 완전해야하고 또 아름다운 정형으로 가꾸어야한다. 시 역시 이와 동일하다.
우선 웃자란 잎새와 가지를 쳐낸다. 그것은 시에서는 관념의 군더더기다. 버려지는 시어들과 웃자란 가지들은 언제나 망설임을 동반한다. 하지만 배틀고 옭죄어 형식미를 갖춰간다. 그리고 섣부른 결론에 앞서 세월에 녹여내는 과정을 겪는다. 실의에 빠지기도, 뭉클한 그리움으로 보듬기도 하고, 마침내 시든 영혼을 숯불에 산화시키며 의도했던 작품을 이끌어낸다. 이 시는 산고와 시련을 겪고 난 후에 맞는 화해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시와 분재가 동일한 등가를 지녔느냐에 대한 물음이 생기지만 그 과정만은 공감이 간다.
그는 힘주어 칼을 간다
긴 골목골목 누비며 아침부터
무딘 가난을 쓰윽쓰윽 갈아낸다
모서리처럼 살아온 날
푹패인 볼기짝 같은 숫돌에다
활처럼 휘인 가난을 펴
칼날 위에 뉘인다
껄끄러운 바람은 연삭기로 잡는
써억 좋은 솜씨
발걸음이 뜸해진 얼마 동안
그가 외치고 다니던 골목이
왜, 길어 보일까
- <바람을 잡는 사람> 부분
그렇다면 이희선 시인이 화해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대상은 어떤 것인가. 이 시에서는 가난이다. 칼 가는 사람이 베어내고 싶었던 것은 가난이다. 대체로 일별해 본 다른 시에서도 이럴테면, (구멍 숭숭뚫린 느티나무 링겔꽂고 저승길 더듬)고, 아버지 (꿈을 흙으로 갈아 일구시던/ 무딘 쟁기)이며, (서둘러 잘려 온 청보리단 앞에서도/허기 숙이던) 모습으로 드러난다. 느티나무의 아픈 생존은 언제나 되풀이되는 것이지만, 뒤의 것들은 대체로 지난 시절의 기억에 머물러 있다. 지금은 많이 극복되었고, 이미 전 시대에 회자되었던 대상들에 대한 지나친 연민은 현실인식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이 시들이 선집의 형태로 묶여졌고, 지난 연대에 쓰여진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시란 언제나 읽는 자의 몫이며 감동은 시대를 초월해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은가.
이희선 시인은 1940년 거창군 마리면에서 출생하여 1988년 『예술계』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 후 「돌의 산책」,「수평선 하나 그어 놓고」등 두 권의 시집을 펴냈다. 앞에 언급한 시인들보다는 등단이 늦은 편이다. 그러므로 아직 그는 평가보다는 현재 진행형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싶다.
지금까지 읽어본 이희선의 시들은 여전히 단아하다. 자신의 시에서처럼 군더더기 없는 시행들은 깔끔한 인상을 준다. 겉멋과 관념에 사로잡힌 설익은 시인들과는 분명히 대비된다. 데뷔작인 <돌의 산책 1>에서 보여주었던, 내면을 향한 단단한 서정성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는 모범적이다. 그 보법은 화려하게 과장되거나 성급하지 않다. 오직 (느리게 변신의 무늴 새겨가는) 보법으로 일관한다. 그의 화해를 위한 존재 방식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