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평론

오승철 시집해설-끝나지 않는 해원굿

이달균 2011. 8. 17. 01:09

 

 

끝나지 않는 해원굿

-시집 <사고싶은 노을>에 대하여

 

 

 

이달균

 

 

오승철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사고싶은 노을>은 제주에 바치는 사모곡이다. 토박이인 그에게 제주는 숙명이며 시의 원천이다. 누구에겐들 고향이 없으랴만, 한 시인의 시편 거의 전부가 고향을 노래한 예는 흔치 않다. 이 시집에 실린 57편의 시는 모두가 제주와 연관된 시들이다. 이들 중 38편의 시는 그에 관한 정보 없이 읽어도 시인이 제주 사람임을 단박에 알 수 있고, 나머지 19편은 직접적으로 제주를 말하지 않았지만, 상상력의 근간이 그곳에서 이루어진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즐겨 오름을 오른다. 몇 년간 제주 오름의 신비에 사로잡혀 360여개의 오름들을 답사 중이다. 낮은 기생화산인 오름들은 위용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박하고 다소곳하다. 덕분에 나는 그와 몇 군데 오름을 오른 적이 있다. ‘용눈이오름’, ‘아부오름’, ‘높은오름’을 차례로 오르면서 시인과 오름과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는 잰걸음을 걷지 않았고, 수십만년에서 수만년 전에 만들어진 생성의 기원에 대해 천천히 얘기하곤 했다.

 

오름을 오르던 느린 보법은 시작활동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다작하는 시인이 아니다. 자신을 드러내거나 초조해 하지도 않는다. 1981년 <동아일보>신춘문예와 <시조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1988년에 와서야 첫시집 <개딲이>를 펴내었다. 그리고 16년이 지나서야 두 번째 시집 <사고싶은 노을>을 펴내었으니 말이다. 평생 한 권의 시집이면 족하다는 어느 선배 시인에 비하면 결코 과작이라 말 할 수는 없지만, 요즘 세태에 비춰보면 분명 느린 걸음이라 말할 수 있다.

 

섬사람들은 늘 열망한다. 손 뻗으면 닿을 듯한 뭍을 열망하고, 수평선 너머로 떠난 이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야반도주하듯, 또 어떤 이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란 맹세를 봇짐에 넣고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는 열병을 앓게 된다. 떠남과 회귀는 그들의 영원한 명제다. 이 시집은 그런 고리를 맺고 푸는 한의 집적물이다.

 

 

제주에서 참았던 눈

일본에 다시 온다.

삽자루 괭이자루로

고향 뜬 한 무리가

대판의 어느 냇둑길

황소처럼

끌고 간다.

 

파라, 냇둑공사 다 끝난 땅일지라도

40여년 <4.3땅>은 다 끊긴 인연일지라도

내 가슴 화석에 박힌 사투리를 쩡쩡 파라

 

일본말 서울말보다

제주말이 더 잘 통하는

쓰루하시, 저 할망들 어느 고을 태생일까

좌판에 옥돔의 눈빛 반쯤상한 고향 하늘

 

‘송키 송키 사압서’ 낯설고 언 하늘에

엔화 몇 장 쥐어주고

황급히 간 내 누님아

한사코

제주로 못가는

저 노을을 사고 싶다.

-<사고 싶은 노을>전문

 

 

처연하다. 삶이란 왜 이리도 고달픈 것인가? 살기위해 삽과 괭이를 들고 대판 쓰루하시 <평야천> 공사를 떠난 그들. 삶은 그들을 내몰았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48년에 일어난 4.3사태와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바다에서 뼈가 굵은 민초들에게 파도는 두렵지 않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역사의 풍파는 그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시인이 대판을 찾은 날은 참았던 눈도 그만 내리고 만다. 부지깽이라도 고향 것을 만나면 반갑다. 하물며 피붙이가 왔는데 하늘인들 무심하랴. 젊은 날 고향 떠난 제주 할망들은 좌판에 누운 옥돔처럼 눈빛이 상해있다. 아직도 일본말보다 제주 말이 더 잘 통하는 사람들. 고향에서 본 낯익은 황혼. 살 수만 있다면 오늘은 저 놀을 사고 싶다. 이렇듯 제주는 그를 상처받게 하고 쉽사리 위무해주지 않는다.

 

 

가을이면/ 영도다리 저도 뱃길 안열고 배겨?// 식민지의 바다에 출소 소식 전해지듯/ 그런날, 저 숨비소리 뱃길 안열고 배겨?.....<중략>....아무도 그 기억이 있을 수 없는 영도땅의/ 사랑이여,/ 세상은 조서나 꾸미는 거// 가을날 그 무슨 물음에/ 고향가질 못 하시나. -<옥련이> 부분

 

 

 

옥련이에게도 고향은 멀다. 옥련의 마음을 부여잡은 부산 제주 간의 화학적 거리와, 수평선에 발목 잡힌 채 식민의 바다에 떠도는 영혼은 무엇일까? 그곳엔 숨겨진 역사가 있다. 1932년 일제의 해산물 수탈에 항거해 1천여 명의 해녀들이 시위를 벌였는데, 옥련은 3인의 주동자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바로 <제주해녀항일운동>이다. 이제 오승철 시인의 해원굿이 왜 붉은 놀빛이었던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1.

쇠뿔로 뻗은 가지 뻗어나간 그 권세가

종지윳 뿌리듯이 뿌려놓은 마을집들

오백년 현청 곁에서 말방이나 놓고 있다.

 

2.

가을은,

용서 못하면 죄가 되는 이 가을은

나도 천년쯤을 귀양 살고 싶어진다.

가지끝 피묻은 세상 홍시처럼 뵈는 날은

-<성읍리 느티나무> 전문

 

 

현청이 있던 마을, 성읍리의 낮은 집들을 아무렇게나 흩뿌려 놓은 종지윳에 비유한다. 반면에 느티나무는 높은 권세로 그 마을을 굽어본다. 용서받지 못한 선비들은 제주에 유배 온다. 그러나 정작 유배지에서 나고 자란 시인은 귀양 갈 곳이 없다. 동헌이 500년 권세를 누려왔다면 시인은 차라리 한 천년쯤 유배살고 싶어 한다. 이제 성읍엔 나무만이 그 사연들을 안다. 시인은 그 곁에서 귀기울여 보지만 말방이나 놓을 뿐 아무 말이 없다.

 

그럴 때 시인은 방선문 계곡으로 나가본다. 그곳은 신선이 방문한다는 큰 바위문이란다. 커다란 바위벼랑에 쓰여진 숱한 이름들과 시편들. 유배지를 지키는 제주사람들에겐 현령이든 유배객이든 상전이 아니었던가. 그들은 ‘방명록 서명하듯 바위마다’ 이름들을 써놓았고, 석수장이들은 벼랑에 새끼줄을 타고 매달려 글을 새겼으리라. 뭍에서 온 권세 높은 양반들은 노래와 술타령을 하였을 것이고, 섬사람들은 술과 고기를 바쳤을 것이다. 그리고는 또 필을 들어 이곳의 일들을 고하였을 것이니, 마침내 ‘마지막 유배지에서 무얼 고해 바쳤을까’하고 되묻고 만다. 오늘도 ‘하류로 못 가 나뒹구는 저 자갈돌들’ 깨뜨리는 ‘방선문 딱따구리’는 사연 많은 한 시인의 유배일기다.

 

 

친구여

우리 비록

등돌려 산다해도

 

서귀포 칠십리

바닷길은 함께 가자.

 

가을날 귤처럼 타는

저 바다를 어쩌겠나.

-<서귀포 바다> 전문

 

 

서귀포 바닷길은 사람의 일을 쓰다듬어 준다. 유배 사는 이에게도, 등 돌린 이에게도 바다는 가슴을 내어준다. 그 칠십리 길을 가다보면 미움도 원망도 가라앉지 않을 것인가. 귤빛으로 타는 바다의 황혼, 그 놀에 기대어 보면 세상사는 한갓 분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쉽게 그 갈등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자신을 다그치는 것이다.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시선을 주면서 갈등에서 놓여나고 싶어 한다.

 

 

아무렇게나 살면서도

늘 살아 있어야지.

 

가을밤 별자리 옮겨 앉듯 납작집에 옮겨살면 수출용 일본자수를 놓는 아내의 절름발이 수틀에도 별이 뜨고, 보채는 내 딸 새미의 눈에도 가난한 나라의 별은 뜨고 한국의 하늘만 참 맑다.

 

낼 아침 출근을 위해

일찍 자야 하는 시인.

- <별> 부분

 

 

가을날 귤빛으로 타는 노을 속에서도 등 돌려 사는 벗과의 화해를 이루지 못했다. 사랑이 너무 깊으면 상채기가 난다. 그 상처가 짓물러 터지지 않고서는 치유되지 않는다. 황혼 속에서 흔들리며 외로워했다. 이제 밤이 깊어 집에 돌아왔다. 고단한 날을 되새겨 본다. 이리 굴리고 채이면서도 살아있고 싶고 시인이고 싶다. 처마 낮은 집, 방안엔 수출용 자수를 놓는 아내의 수틀과 보채다 잠든 딸의 하늘이 있다. 오늘 밤은 새삼 맑아 보인다.

 

시인은 그렇게 화해를 준비한다. 神에게도 아름다운 서귀포로 오시라 한다. ‘하늘에는 천제연만한/ 맑은 못물 없으시’니 이제는 ‘하늘 닿은/ 저 뱃길을’ 터놓으시라 보챈다. 그는 제주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이 시집 <사고싶은 노을>은 서귀포의 바람, 역사 속에서 속죄하고 번민했던 날들의 비망록이다. 그래서 돌아오지 못하고 떠도는 제주새들의 혼령을 따라 떠나곤 했다. 이런 제주 사랑은 이제 외려 그를 옭죄는 족쇄가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오승철 시인의 끝나지 않는 해원굿을 보게 되겠지만, 애절한 놀빛 시어들은 천제연 못물에 씻어 밝아졌으면 한다. 이 시집 한 권을 읽으면서 제주의 알려지지 않은 곳곳을 여행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와 함께 서귀포 칠십리를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