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평론

시조, 통일시대를 대비하자.

이달균 2011. 8. 16. 23:18

시조, 통일시대를 대비하자.

이 달 균

1. 나약한 아마추어리즘을 버려라

 

지난 7월 20~25일까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가 평양, 백두산에서 열렸다. 남과 북 200여명의 문인들이 참여하여 60년 만에 처음으로 닫힌 벽을 모국어의 품안에서 녹여 내렸다. 동시대를 살면서 겨레말을 소중히 다듬어 쓰는 문인들이 모였다는 것은 정치인, 가족상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일각에는 남측 대표문인 100인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지만, 통일 문학의 첫 삽을 뜨는 일이기에 충분히 박수 받을 행사라고 보여진다.

 

이 축제를 지켜보면서 시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조금은 참담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측 98명의 문인 중에 나름대로 민족문학의 한 짐을 묵묵히 지고 분단의 고개를 넘어온 시조 시인들의 면면이 보이지 않은 까닭이다. 한국문학 속에서 시조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인지 아니면 적극적인 참여와 의견개진이 없었던 시조인 스스로의 문제인지가 잘 납득되지 않는다.

 

7차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교과서에서 경시당하고, 국제도서 전시회에서는 한 권의 시조집조차 취급되지 않았고, 62명 조직위원 중 시조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이번 축제에서마저 시조인의 참여가 전무한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받아들이지 않고 허공에다 외치고 침을 뱉는다면 그 또한 공소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면 시대의 예리한 칼날에 베여 밀려난 시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좀 더 겸허하게 뼈를 깎는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국문단 전체와 소통하지 못하는 시조단의 공고한 벽은 무너져야 한다. 시조단 내부에서 원로며 신인이며를 가르는 연공주의, 서열주의를 단호히 배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좋은 작품을 쓰는 시인만이 살아남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내가 쓰는 시조 한 편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기여되고 있는지 반문해보아야 한다. 원로는 그저 이름값으로 대접 받길 원하고, 중진들은 벌써 원로행세 하고, 신인들은 이를 답습하며 적당히 3장6구를 버무려 원고청탁에 응하는 안일함은 없었는가. 만약 있다면 이는 나약한 아마추어리즘일 뿐이다. 역사는 그들에게 의자를 내어주지 않는다. 갈등하고 상처받으면서도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실험하는 시인이 아니면 변화하는 시대의 주역일 수 없다.

 

2. 시조는 어떻게 시대에 대응하고 기능하는가

 

지상에 존재하는 것은 늘 움직인다. 시조 역시 마찬가지다. 오래 지켜져 온 정형은 굳건하지만 담기는 내용물은 언제나 변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오늘 날 현대시조가 어떻게 시대에 대응하고 기능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시조시학>상반기 호를 주목해 본다. ‘광복 50주년 기념특집 50인선’이란 다소 거창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장순하, 송선영에서부터 문희숙, 장수현 까지 등단 50년대에서 90년대의 시인 50인을 한 자리에 묶은 것이다. 수록된 100편의 작품을 통해 현대시조의 흐름을 짚어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기획이라 여겨진다. 각각 한 편의 대표시와 신작을 실었으므로 한 시인의 현재 빛깔을 볼 수 있는 동시에 50년 간의 연대기적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편집자의 시각에서 나름대로 대표성을 인정한 시인들의 작품이므로 정독해 보았다.

 

내 고향 금릉벌에 노고지리 우지지고

순금으로 빚은 햇살 민들레꽃 곱다는데

내 고향 안 갈 수 있나 봄이 찾아왔다는데.

경부선 고속열차 미역줄기 같은 바람

바람도 봄바람엔 철로 길이 휜다는데

황악산 안 갈 수 있나 진초록이 핀다는데.

-정완영 <봄이 찾아왔다는데> 전문

1.

낸들 알았으랴

무심결에 네가 뱉은 말

내 흉터 들추어낸 줄, 아예 거기 못 박힌 줄,

소시적 아픈 사연이

살 맞은 듯 도져오는 줄,

2.

정자나무 품이 넓어

구색(具色)이던 까치집이

신록을 바람이 흔드니 유적처럼 들나네

떠나면 그만인 줄 아나,

한 점 못 박아두고,

3.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일 염치없다 하네

그 어떤 연장으로도 뺄 수 없는 만패불청의

저승에 품고갈 못은

녹도 슬지 않는다.

-서우승 <못 이야기> 전문

 

50~70년대 시인들의 작품 중에서 2편을 골라보았다. 정완영의 시조는 원로다운 안정감을 보여준다. 언어를 맵시 있게 다루고 운율을 제어하는 힘이 자연스럽다. 보폭의 강약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안으로 다스리는 유장함 역시 익히 보아온 선생의 격을 확인하게 된다. 첫수 초중장엔 동심마저 엿보인다. 낯선 비유를 들이대지도 않고 이미지를 차용해 오지도 않는다. 그저 천진난만으로 작법을 뛰어넘는다.

 

70년대에 등단한 시인 서우승의 시도 시종 안정되게 읽힌다. 말에 의해 못 박힌 상처, 그냥 바람이 지나갔을 뿐인데 뿌리째 흔들리는 까치집의 위험, 자식 앞세운 어버이의 고되고 푸른 못 등 살아오면서 체험한 각각 다른 모습의 못들은 세사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는 우리들 삶의 모습이다. 이런 동질의 아픔은 낯익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쓰여지지는 않는다. 위 시 셋째 수는 직접 경험이든 아니든 간에 연륜이 쌓이지 않으면 공소해지기 쉬운 소재다.

 

길은 물에 이르러 조용히 죽는다

물은 바다를 만나 제 목숨을 넘겨주고

바다는 수평에 닿아 하늘 길을 만든다

햇살들이 맨몸을 굴려 禪境에 든 봄철 한낮

반쯤 열려있는 문, 주인 없는 빈 백담

내, 나를 만나는 것도 그랬으면 좋겠다

종소리 산을 흔들고 마을로 내려간 저녁

고요도 첩첩 산중 새 울음도 잠든 산사

마음 속 이는 바람결 꽃 한 송이 톡! 진다

-이지엽 <편안한 만남> 전문

 

은자 같은

꼿꼿한 시간의 표백 같은

혹은

손이 희어서 슬픈 자작 같은

제 안만

오롯이 보다

뼈가 된

고독 같은

그 결에

하늘 못의 심연을 훔친 듯한

長白의

물보라를 늠연히 세운 듯한

뼈마다

경이 들릴 듯

눈 시리다

은빛 직립

-정수자 <자작나무> 전문

 

같은 책에서 80년대에 등단한 두 시인의 시를 골라보았다. 이지엽 시인의 안목은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뭍에 닿아 길을 바꾸는 ‘강물’을 상상하지만, 이 시인은 물에 닿아 최후를 맞는 ‘길’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리고 다시 바다에 몸 바쳐 죽은 강물을 바라본다. 결국 바다가 하늘에 길을 내는 것은 이런 영혼들의 진혼을 비는 경건한 행위로 인식된다. 진혼굿은 슬픔을 승화시켜 일상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 산 첩첩 찾아온 산사는 비어 있다. 그 예사로운 풍경이 얼마나 많은 중생들의 사연을 감내하고 품어 안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종소리도 이운 밤, 마음에 이는 잔물결 같은 번뇌도 톡! 작은 꽃봉오리가 지듯 평정을 찾는다.

 

시조에서 가락과 격조가 있다면 정수자 시인은 격조에서 만큼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 시에서도 정제된 시어들의 정형성이 돋보인다. 자작나무의 흰빛을 은자의 꼿꼿한 시간의 표백으로 표현한다. ‘시간의 표백’이란 만져지는 현재 시간의 영원성으로 읽혀지는데, 은자의 시간은 언제나 머물러 있거나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 첫수 중장은 정지용의 시 <카페. 프란스>의 한 구절 ‘나는 子爵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하여서 슬프구나!’를 변용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음운의 동어반복을 통해 자작나무의 직립의 고결함과 자작(子爵)이란 신분 지위, 수피의 흰빛과 자작(子爵)의 흰 손을 자연스레 병치시키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그런 고결함은 장백의 물보라로 치환되었다가 다시 뼈에 경문을 새기는 올곧은 시심으로 옮겨 온다.

 

결국 두 시인은 각각 다른 대상을 노래하였지만 마지막엔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성찰한다. 이지엽 시인은 여전히 깨침을 향한 수행 중이고, 정수자 시인은 시어의 절제를 통한 삶의 성찰을 모색 중이다. 선배 시인들이 언어를 데불고 노는 자유 자재함을 보여준다면, 이 두 시인은 언어 앞에서 참회하고 절제하는 성직자의 자세에 더 가까이 가있다.

 

인간사 빛두루말이 애당초 글러먹은 몸

나보다 앞서보고 온종일 짖어쌌는

땡칠이 저 땡칠이 놈 날 새면 꼬실러볼거나

여편내 두 달 품삯 선불로 울궈내어

끗발 한 번 못 재보고 물러앉은 새벽녘

미닫이 문틀에 묶여 죽자 우는 돌장이

사람의 새끼란 제 팔자 저 타고나는 법

처갓집 단칸방에 어린 것을 밀어 넣고

사나이 대장부 길을 훠이훠이 나서볼거나

목 좋은 난전머리 속살 무른 과부년

한 사흘 핥고 빨고 작신작신 물매질하게

땡칠이 저 땡칠이놈 이 밤으로 꼬실러볼거나

-김윤철 <복중> 전문. 「시선」2005 여름

 

새벽강 물안개가 들려주는 귓속말

머뭇거리고 있을 때 헤어져 더욱 그리운

둑 너머 바다로 간 사람

목소리가 가물거린다

흐르면서 깊어진 사랑은 보이지 않고

온몸을 휘감는 햇살의 진동아래

강물은 빛나는 발걸음

오래 오래 지즐거렸다.

-옥영숙 <강가에서> 전문. 「시조월드」2005 상반기 호

 

90년대와 2000년대에 등단한 두 시인의 작품을 보기로 한다. 김윤철 시인의 시에서는 저자거리의 냄새가 난다. 조선 말 사설시조에서 익히 보았던 재담력과 장터거리 역마살 낀 약장수의 외침을 버무린 듯한 한이 녹아있다. 못난 놈에게는 똥개도 사람을 업신여기고 짖어댄다. 인간사에서도 노름판에서도 끗발 한 번 날려보지 못한 사람에겐 개추렴이나 한 번 하고 복날을 잊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있겠는가. 김윤철의 시는 팍팍한 삶에 지친 현대인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런 만큼 감정의 기복이 크고 사변성이 강하다.

 

이에 비해 옥영숙 시인의 시는 잘 정제된 서정을 바탕으로 그려진다. 오래 자유시에서 닦은 보법이 한결 자유로워 보인다. 정형을 강조한 나머지 댓구에 의존한다거나 관념적 시어를 들고 와서 성급하게 종장을 처리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이미지도 선명하다. 둘째 수 중 종장의 ‘온몸을 휘감는 햇살의 진동아래/ 강물은 빛나는 발걸음/ 오래 오래 지즐거렸다.’는 밝지만 내내 여운을 남긴다. 물살의 너울거림을 ‘햇살의 진동’이라 표현한 것이 이채롭다. 멀리 잊고 있었던 도시에서 날아온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는 우릴 불현듯 일상으로 돌아오게 한다. 또한 종종 거리며 달아나는 강물의 발걸음과 오래 그곳에서 지즐대면서 떠나오고 싶지 않은 마음을 대칭으로 놓아둔다. 그런 두 마음의 충돌로 인해 시는 웅숭깊어진다.

 

「시조시학」과 다른 몇 권의 책들을 통해 현대시조 50년의 모습과 변화의 과정을 읽을 수 있었다. 분명 시조인구에서부터 다양한 소재에 이르기까지 시조는 질과 양면에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2% 부족한 그 무엇이 있다. 위에 인용한 정완영 선생의 고향을 향한 그리움, 서우승 시인의 못 이야기는 다감한 소재이긴 하나 낯설거나 신선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기왕에 현대시조 50년을 일별해보는 자리라면 작고 이전의 김춘수의 시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고, 변화의 몸짓이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는 위험한 치기를 경계하지만, 익숙한 낯익음 또한 경계한다. 독자들의 입맛은 예민하다. 시인은 자신의 시세계 속으로 들어오길 바라지만 독자들은 구미에 맞지 않으면 책을 던져버린다.

 

김윤철 옥영숙 두 신인의 경우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김윤철의 구성진 가락은 좋지만 어딘지 이 시가 현대의 노래로 읽혀지지 않는다. 물론 소재가 옛것이라고 해도 현대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옛 얘기를 화학적으로 변화시켜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시는 물리적 변화에는 성공하였지만 완전한 화학적 변화에는 미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런 아쉬움은 옥영숙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흠잡을 데 없는 단아함은 장점이지만 시를 너무 예쁘게 접근하는 자세가 문제다. 앞서 말했지만 오늘날 내가 쓰는 시조 한 편이 누구에게 어떻게 기능하는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하여야 한다. 쓰는 행위에 앞서 무엇을 쓰고 왜 써야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3. 통일 시대의 시조를 위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변해가듯이 시조도 부단히 변해간다. 정형시를 화석화된 양식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시조인들 역시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직도 시조 일각에서는 양식을 내세워 내용의 변화마저 수용하지 않으려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이야 말로 ‘시절가조’라는 시조 본질을 망각한 것이다. 정형을 무너뜨리자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무너뜨려야 한다. 3장 6구 안에서 부단히 실험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런 몸짓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조단은 젊은가?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시조로 무엇을 고민하는가? 문제의식은 있는가? 끊임없이 이슈를 생산하고 확대재생산해 내는가? 한국문단 전반과 소통하고 발언하는가? 이런 질문에 큰 소리로 답하지 못하면 시조단은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남북의 문인들은 서로 만나 문학적 통일을 꾀하고 공동창작은 논의하는 단계에 까지 와 있다. 남북의 방언들은 자연스레 모국어의 넓은 품안에서 헤엄쳐 다닐 것이다. 이런 현실을 멀찍이에서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북한 문인들 앞에서 시조의 위상을 당당히 말하고 창작의 대열에 동참시킬 것인가. 이는 바로 시조인들의 몫이다. 한 가지는 좋은 시조를 창작하여 북한 동포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요, 또 다른 하나는 정형시의 존재가치를 알려 통일 후에도 면면히 계승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조는 정말 역사 속의 화석으로 잊혀져 갈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