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 대안은 없다.
2004년 6월 3일, 서울 그랜드 호텔 컨벤션홀에서는 아시아, 태평양, 유럽, 아프리카, 북남미 등 57개국 400여 문화전문가단체대표, 국제기구, 정부기관대표들이 모여 <한국의 스크린쿼터 현행유지 긴급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최종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스크린쿼터란 자국 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극장에서 일정기준의 국내영화를 상영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재 한국에서의 의무상영 일수는 연간 146일(40%)이지만, 한국영화 수급 상황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106일 정도 된다.
그동안 문화부는 단 하루도 축소하지 않겠다고 말해왔지만, 최근 이창동 장관의 입을 통해 축소발언이 나온 것을 보면 미국의 압력이 전방위적으로 가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네티즌들은 불가와 찬성의 대립각을 세우고 논쟁 중이다.
찬성쪽의 입장은 통상이란 경제적 측면을 고려할 때 보호정책은 한계가 있으며, 무제한적으로 경쟁해야 진정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폐지가 아니라 축소이므로 탄력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쪽 입장은 이 제도는 국제법상 전혀 문제가 없는 정당한 문화정책이며, 그 효율성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 두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도 방안도 없다. 한 번 축소된 것을 다시 제자리로 갖다놓는 일은 그저 설득을 위한 말에 불과할 뿐이고, 고수할 경우엔 사사건건 통상에서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자의 입장은? 나는 단호히 불가쪽에 표를 던진다. 미국의 이런 압력이 국제사회에서 그다지 정당성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한 개인, 나아가 한 국가의 경험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므로 다른 상품 서비스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진정한 세계화는 다양고 독특한 민족문화를 인정하고 수용할 때 구현된다. 헐리우드는 타국 영화정책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작품의 변별력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여야 한다. 영화는 영화적 시각에서 바라보아야지 국제무역 협상의 차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 스크린쿼터 압력은 유네스코에서 작업 중인 <문화다양성 협약>과도 정면 배치된다.
장관 이창동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다시 감독으로 돌아왔을 때 ‘오아시스’ 같은 작품을 생산할 수 있을지, 또한 국제영화제에서 각광받는 홍상수, 김기덕 감독을 위시한 저예산 예술영화인들의 미래는 어떨지 벌써부터 염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