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영화 이야기

5월에 다시 보는 두 저항 시인의 영화

이달균 2011. 8. 1. 17:19

   내 학생 때의 공책 위에/ 내 작은 책상과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 또는 재 위에/ 나는 쓴다 너의 이름을. -(폴 엘뤼아르의 ‘자유’ 부분).

 

   시인 엘뤼아르와 화가 피카소는 평생 사상의 영향을 주고받은 동지였다.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엘뤼아르는 “지금 모든 시인들이 타인들의 생활 속에, 공통된 생활 깊숙이 파고 들어가야 할 권리와 의무가 주어진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자신을 향해 또 다른 시인을 향해, 그리고 모든 예술가들을 향해. 이런 엘뤼아르의 저항적 면모는 피카소에게도 영향을 미쳐 불후의 명작 ‘게르니카’를 그리게 된다.

 

   ‘데스 인 그라나다’는 스페인의 천재시인 로르카에 관한 영화다. 모두가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또 잊어버리길 원해지만, 리카르도(엔디 가르시아)는 결코 스페인 내전을 잊을 수 없었다. 18년이 지났고 푸에르토리코에서 대학교수가 되었지만 그는 늘 그때 그곳(그라나다)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전이 한창이던 1936년 무렵, 10대였던 리카르도는 로르카의 시와 연극에 흠뻑 빠져 있었고, 그의 연극을 보면서 글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시가 폭력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분장실에서 만난 우상은 어린 그에게 “날 잊지 말라”는 의미 있는 한 마디를 남긴다. 얼마 후 그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사건은 역사 속에 묻히고 만다. 리카르도는 잊혀진 영웅의 죽음과 진실을 캐내기 위해 조국으로 간다. 이미 프랑코의 지배하에 놓인 스페인에서 감춰진 진실을 찾는 일은 또 하나의 위험한 저항이었다.

 

   이 영화가 빠른 전개와 극적구성으로 의문의 죽음을 추적했다면, 칠레의 시인 파브로 네루다의 일시적 유배를 그린 ‘일포스티노’는 잔잔한 한편의 수채화처럼 그려진다. 나폴리 근처의 작은 섬, 네루다에게만 편지를 전해주는 전용 우편배달부 마리오, 그의 애인 베아트리체와의 소중하고 특별한 인연을 아름다운 음악과 풍경으로 담아내고 있다. “아파요. 사랑에 빠졌나 봐요. 하지만 계속 아프고 싶어요.”란 대사는 이 영화의 빛깔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네루다에게서 참된 용기와 시의 힘에 대해 눈을 뜬 순진한 청년 마리오는 시위에 참가하여 연단 위에서 ‘네루다에게 바치는 시’를 읽으려 한다.

 

   로르카와 네루다는 둘 다 폭압의 시대를 저항한 시인이었다. 그러나 생애는 서로 달랐다. 로르카는 37세에 총살당했고, 네루다는 69세를 살았고 71년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두 시인을 다룬 영화 역시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시민 혁명의 달, 5월에 다시 보고 싶은 영화 2편을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