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악동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다.
<백학을 떠올리면 고고함 혹은 순결/ “코뿔소!”라고 말하면 저돌성과 단순무식/ 견고한 인식의 주머니는 둥글고 슬프다.> -필자의 시 ‘흑과 백’의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두 동물을 이렇게 인식한다. 하지만 백학에겐 긴 부리로 물고기를 패대기치는 공격성이 있고, 코뿔소에게도 여린 눈물과 애련이 있다. 이처럼 한 번 각인된 고정관념은 단단하여 잘 깨어지지 않는다.
그런 선입관의 피해자로 우린 숀팬을 기억한다. 마돈나와의 결혼, 폭행으로 인한 구설, 이혼 등등의 행위들 탓일까? 아니면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외모 탓일까? 헐리우드에도 미남이 아닌 주연급들은 많다. 앤서니 홉킨스, 캐빈 베이컨, 잭 니콜슨, 마론 브란도 등등 이들은 분명 미남배우군에 들진 않지만 누구도 악동, 이단아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유독 숀팬에겐 그런 수식어가 붙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런 이미지의 고착이야말로 역설적으로 훌륭한 연기자임을 증명한다. 그의 얼굴에 풍기는 묘한 악동의 이미지는 영화 속 인물과 잘 결합된다. ‘데드맨 워킹’에선 누구에게도 동정받지 못하고 집행날짜를 기다리는 사형수를 연기한다. TV에 대고 히틀러를 찬양하고, 정신적 위안자로 교도소를 찾아온 온 수녀(수잔 서랜든)에게 “섹스가 그립지 않느냐?”라고 물어대는 전형적인 구제불능. 또한 ‘더 게임’에선 자본주의의 표본적 인간 마이클 더글러스를 혼돈의 게임에 빠지게 하고, 예상된 비극적 결말에서 반전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천사탈주’에선 로버트 드니로와 함께 꺼벙한 탈옥수를, ‘아이 엠 샘’에선 정신연령이 7세에 불과한 장애 아버지를 연기했다. 한결같이 존경과 흠모의 대상과는 거리가 먼 역할이었지만, 숀팬이 아니면 해내기 어려운 역이기도 했다.
이런 사실적인 연기는 영화에 대한 진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동안 ‘데드맨 워킹’(1995), ‘스위트 앤 로다운’(1999), ‘아이 엠 샘’(2000) 등 세 번이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불행히도 아카데미는 그를 비켜갔다. 그 또한 화려하고 제도화된 틀을 부자연스러워 했고, 시상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언더그라운드적인 행동은 그를 악동 혹은 이단아로 불려지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아카데미는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미스틱 리버’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가 무대에 올라서자 식장은 긴장했지만, “연기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로 수상소감을 밝혔다. 불편한 제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자유주의자에서 형식마저 포용할 수 있는 진정한 배우로 거듭난 순간, 참석자들은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