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영화 이야기

아듀, 2003년 한국영화

이달균 2011. 8. 1. 16:51

   2003년 한 해 우리나라 영화계는 어떤 모습으로 달려왔을까.

 

   금년 상반기 한국영화는 관객점유율 51.3%를 기록하며 중흥기의 진입을 예고했다. 예년에 비해 블록버스트 영화가 별로 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록한 이 수치는 영화선진국을 향한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기록은 스크린 쿼터 폐지 논란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영화가 밥먹여 주냐’는 경제론자들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 사수해야할 문화’라며 영화인들은 입을 모아 설전을 벌였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서 급기야 임권택 감독은 6월 17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우리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여 스크린 쿼터를 축소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그날로 나는 영화를 그만 두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 문제는 아직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해를 넘기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상태다.

 

   올해 한국영화는 관객점유율에 비해 영화제 쪽의 수확은 별로였다. ‘바람난 가족’이 제30회 플랑드르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고,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봄’이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칸, 베를린 등등의 권위와 전통을 인정받는 영화제 수상소식은 없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관객들의 취향탓이 아닐까 여겨진다. 삶이 힘들어진 만큼 관객들은 가벼운 코메디와 섹스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이런 현실이 작품성과 예술성이 강조되는 영화에 대한 투자를 인색하게 한다.

 

   2003년도 스크린을 책임진 배우는 누구일까? 아무래도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와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아닐까 싶다. 송강호는 책임감은 강하지만 얼뜨기 같은 역할의 시골형사로 분해 빛나는 조연들과도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어냈다. 최민식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지배했다. 그의 열연은 다른 배우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시나리오 속에 깊게 스며들어 제 나름의 인물을 창조해 냈다. 역시 이들은 우리시대 최고 배우임을 입증해 보였다.

 

   이 두 영화는 관객의 취향에 함몰되지 않고 감독의 뜻대로 진지하게 만들어졌다. 관객들 역시 이런 정통성을 외면하지 않았다. 사극이 퓨전으로 가고, 조폭이 코메디로 둔갑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관객들은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살인의 추억’이 500만명을 돌파하고, ‘올드보이’와 ‘똥개’, ‘싱글즈’ 가 기대만큼의 흥행을 기록했다. 연말에 걸린 ‘실미도’ 역시 작품성과 흥행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함께 겨냥하고 있다. 올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실미도’의 흥행결과는 밀도 있는 구성과 뭉클한 감동이 좌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