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과 린치 일병
2003년의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올해 역시 전쟁과 테러라는 두 단어로 압축될 수 있겠다. 포연 속에서 사람들은 끝없이 죽고 상처 입는다. 누구를 위하여 결전의 종을 울리나? 저마다 정답은 다르다. 한 가지 틀림없는 것은 병사 개인의 선택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는 힘 있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 왕권이든 민중이든 거대한 힘을 분출시키기 위해선 영웅이 필요하다.
전쟁이라면 특히 그렇다. 그래서 전쟁은 영웅을 낳는다고 한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영웅은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다. 정교히 짜놓은 틀 속에 평범한 누군가를 끼워넣어 자꾸 호승심을 자극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영웅 만들기의 진실이다. 만들어진 영웅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터무니없는 애국심을 부추긴다.
영화 <황산벌>은 우리 민족 대표적인 전쟁영웅을 비틀어 보여주었다. 코미디답게 과장되고 황당해 보였지만, 화랑관창의 장렬한 죽음은 황산벌 전투를 위한 신라인들의 고육책이었음을 엿보게 한다.
미국은 영웅 만들기의 대표적인 나라다. 전쟁과 성조기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두 형을 전쟁에서 잃은 막내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뛰어든 소대원들의 희생은 엔딩장면에서 장엄하게 부활한다. 그들의 주검 위로 성조기가 덮이고 국립묘지의 나팔소리가 울려퍼질 때, 그 무모했던 명령과 죽음은 곧바로 장렬한 애국으로 탈바꿈된다.
그들은 이라크 전쟁에서도 어김없이 린치 일병이란 영웅을 만들어 냈다. 440여명의 미군과 15,000여명의 이라크인들이 죽은 이 전쟁의 명분과 애국심을 위해선 누군가가 필요했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반전의 기운이 팽배해 있는 시점이었으므로 린치 일병의 얘기는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이라크 군의 매복공격으로 동료병사 11명이 숨졌고, 그는 포로가 되었다. 급기야 특수부대와 해병대의 작전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그 과정에서 최후까지 총기를 들고 항거했다고 언론들과 국방부는 영웅 만들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병상에서 깨어나면서 창조된 영웅의 일화는 허구였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당시 극도의 공포 때문에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포로로 잡혔다고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전쟁은 또 다른 라이언 일병을 창조해낼 것이다.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영화 <리틀 빅 히어로>는 영웅 만들기의 허구와 진실을 잘 보여준다.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영화, 덴젤 워싱턴과 맥라이언이 주연한 <커리지 언더 파이어>도 기억난다. 그들은 영웅을 만들고 그 허구를 꼬집는 영화로 돈을 번다. 그래서 전쟁은 문화이며 경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