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상작가의 소중한 기록물들
세계 경제위기, 오바마 취임, 용산 철거민 사태 등등 연일 큰 뉴스가 보도된다. 자꾸만 그쪽으로 원고를 쓰고 싶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미시적인 것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공룡은 다 죽었지만 아직도 잠자리는 살아있으니. 오늘은 한 영상 작가의 얘기를 하려고 한다. 먼저 그가 찍어 둔 영상기록물 하나를 스케치 해본다.
#사회를 보는 김복근(현 경남문협 회장)시인이 김춘수 선생을 소개하고 있다. 선생은 중절모에 나비넥타이 차림이다. 아마 마산의 마지막 나들이였을 것이다. “마산의 옛 이름은 합포인데...”로 시작하여 고운 최치원, 노산 이은상, 김용호, 김수돈, 조향, 천상병 등의 시인들을 회상한다. 약간 말씀이 길어지자 어린이들의 소음이 들려오고 장내가 산만해지자 김미윤 시인의 재치 있는 만류로 아쉽게 더 잇지 못한다. 이 모습을 고 황선하 시인, 전문수 당시 경남문협회장, 신상철 수필가, 황명 한국문협 회장, 평론가 윤재근 선생 등이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다. 함께 참석한 전 국회의원 강삼재, 김종하 씨 등등의 시낭송도 이채롭다.
#두 번째 기록물은 문신미술관의 정경이다. 많은 사람들 속에 조경희 전 장관, 유준상 미술평론가, 당시 마산예총회장 이필이 선생 등등 많은 분들이 얼핏 화면에 잡힌다. 장내가 정리되고 사회자가 문신 선생을 부르자 밝고 건강한 모습의 선생이 걸어 나온다. “저는 원래 말 주변이 없어서 간단히 몇 마디만 하겠습니다...... 중앙이 아닌 제 고향 마산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지은 것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신 선생의 짧은 인사말에 이어 여러 순서가 진행된다.
앞의 것은 1996년 ‘문학의 해’를 맞아 경남매일신문사가 돝섬에서 주최한 “문학인 만세”의 한 장면이다. 이미 작고한 황선하 시인의 건강한 모습, 병마와 씨름 중인 신상철 전 경남문협회장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긴 쉽지 않다. 뿐만 아니다. 경남문인들의 촌극 “심순애와 이수일”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이광석, 서인숙 두 원로문인의 모습도 재미있다. 변사역을 맡아 열연하는 작고한 최명학 시인의 모습은 이 영상이 아니고선 볼 수 없다.
두 번째 것은 94년 5월 26일에 거행된 문신미술관 개관 전야제 풍경이다. 세월이 그리 많이 가지 않았는데 벌써 많은 이들이 작고하였다. 이 화면을 빛낸 문신선생을 비롯하여 화가 변상봉· 박종갑, 시인 이선관 등 여러분이 이승을 떠났다. 작품은 남았지만 움직이는 생전의 모습은 많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군더더기가 많은 영상이지만 현장을 생생히 잡고 있다. 편집되지 않은 영상이기에 더 소중한지도 모른다. 영상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물론 TV방송국의 카메라도 와 있었지만 방송국의 화면은 뉴스에 잠깐 실리고 만다. 진짜 영상은 전 과정을 세세히 기록한 개인의 것이 훨씬 나은 부분도 있다. 예술은 작품으로 창작되지만 그 행위와 문인의 모습은 문자로만 기록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영상들은 마산의 영상작가 정호씨가 촬영한 것이다. 한 영상작가의 영상물치곤 매우 소중한 자료다. 누구에게 촬영비를 받지도 않았지만 작가정신을 발휘해 예술행사를 찾아가 화면에 담았다.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몇 시간씩 행사가 끝날 때까지 촬영한 결과물이다.
이를테면 92년 6월 13일부터 시작된 “마산문화회관 건립을 위한 서명운동” 자료는 지금의 <마산 3.15아트센터>가 지어지기까지 많은 마산예술인들의 퍼포먼스와 행사들을 기록한 것이다. 또한 94년 마산바다살기 운동 일환으로 진행된 “새물맞이 굿”은 여러 시간의 분량인데, 깨끗해진 마산바다의 오늘이 있기까지 기울인 노력의 한 부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기록들은 살아 있는 마산문화사다. 자칫 일회성 행사로 묻혀 버릴 지도 모를 것들이 동영상으로 남아 당시를 증언 한다.
이밖에도 그가 촬영한 영상물은 수백 종에 달한다. 다 나름대로 중요한 자료들이다. 대충 일별해 본 것들만 해도 92년 ”마산예술제 전야제“, 92년 추산공원에서 열린 “솟대패 공연”, 92년 “고모령 향토작가 기념전”, 93년 올림픽 생활관에서 열린 “한 여름밤 시의 축제”, 97년 “경남오페라단 공연”, 99년 “마산 개항 100주년 및 시민의 날 거리축제”, 99년 “바다의 날 전야제” 등등이 보인다. 해당 단체도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이다.
이 기록물들은 오랫동안 지하셋방에 갇혀 습기와 씨름해 왔다. 알다시피 비디오는 수명이 길지 않다. 어떤 것들은 벌써 흠이 가기 시작한다. 관리와 보존이 시급해 보이는 까닭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편집되지 않은 것들은 알맞게 편집을 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겐 이런 경제적 여유가 없다. 제대로 된 컴퓨터 한 대도 없다. 소중해 보이는 자료들이 사장되기 전에 어떤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총, 문협, 미협, 국악협회 등 필요한 곳에 가서 자료로 활용되어야 한다. 이 영상물들은 햇빛을 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