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의 교훈 -고성오광대의 경우를 보며
숭례문이 돌아가셨다. ‘국보 1호의 거룩한 소신공양(燒身供養)’이다. 진작부터 경고는 있었지만 우리는 무심했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천년고찰 낙산사가 화마에 뒤덮이면서 보물 제479호인 낙산사 동종과 도유형문화재 제33호인 홍예문이 소실될 때도 말은 많았지만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숭례문이 분신하셨다. 자신의 죽음으로 제2, 제3의 문화재들이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충격적 최후를 맞은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걱정되는 것이 있다. 우리는 한곳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이번 일이 자칫 유형문화재 보호 쪽으로만 관심을 갖는 계기로 작용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유형문화재 못지않게 무형문화재의 보존과 활성화에 대해서도 균형을 가져야 한다. 만약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를 범한다면 숭례문의 죽음은 큰 교훈이 되지 못한다. 숭례문은 그나마 설계도는 있다. 본래의 것은 사라지더라도 원형에 가깝게 복원은 가능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형문화재 관리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화재청에선 보존과 전승에 관한 제반 일들을 위해 관계전문가가 참여하는 소위원회도 운영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1990년대에 들어와 세계의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관심을 기울인 것에 비해 한국은 이 분야에 일찍 주목하였고, 우리 문화재보호제도가 1993년 제142차 유네스코 집행위원회에서 각 회원국에 그 제도를 권장하는 안으로 채택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런 대외적 인지도만큼 무형문화재의 전수는 내실을 기하고 있는가.
고성오광대를 지켜가고 있는 이윤석씨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무형문화재는 전수자가 없으면 완전히 사라진다. 이 전수자 관리를 위해 국가에서는 어떤 계획과 활성화 대책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소리를 높인다.
밤새 숭례문이 불타고 잔해만 남은 날 필자는 고성오광대 보존회관에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훅! 하는 땀내음에 잠시 숨을 멈춰야 했다. 눈대중으로 봐도 한 마흔 명쯤의 젊은이들이 강사와 함께 전수관을 땀으로 적시고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 동아리에서 이곳을 찾아왔다고 한다. 탁한 공기 때문에 금방 머리가 아파왔다.
자세히 보니 연습생 중엔 푸른 눈의 외국인들도 보인다. 1930년대 일제에 의해 징용당해 줄곧 사할린에서 산 까레이스키 3세들이라 한다. 우리말은 한마디도 못하지만 몸짓으로 배운 모국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들은 고성오광대보존회에서는 마침 방학을 맞아 이들을 초청한 것이다. 물론 제반 경비는 오광대에서 자체 조달하였다.
보존회의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초청하는 것은 소중한 무형문화가 우리의 것만으로 존재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 6개 주 순회공연 때의 감동을 생생히 전해준다. 서구의 관례상 관객이 무대로 올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예외 없이 공연이 끝날 무렵 무대에 올라와 익숙지 않은 몸짓으로 하나 되어 돌아가는 미국인들의 신명을 보면서 우리 것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체험했다는 것이다.
무형문화재는 대체로 지역의 민초들에 의해 생성되고 보존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들 단체들은 운영이 미숙하고, 예산도 부족하다. 공연장과 연습장의 부족은 물론이요, 단체 내의 음향시설이며, 영상을 제작할 인력과 시스템도 없다. 원형을 후세에 전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외연도 확장하여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이제 그 중요성만큼이나 보존과 활성화를 위해 관의 지원이 절실하다. 그동안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과감하고 공격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이야 옛 어른들에게서 배운 몸짓을 보존하기 위해 사명감으로 진력해 왔지만 다음 세대에게 사명감만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
문화의 시대 21세기를 맞으며 참화를 당한 숭례문을 보면서 새삼 많은 생각이 든다. 숭례문의 교훈은 비단 유형문화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유·무형의 것을 함께 아끼고 가꾸는 자세를 가지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다.
- 기사작성: 2008-02-20